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두 명의 미국 장교가 인도에서 출발해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전략정보국(OSS·훗날 CIA의 전신) 소속 일리아 톨스토이(1903-1970) 소령과 브룩 돌런 2세(1910-1945) 대위였습니다.
오늘날 이들의 티베트 방문은 단순한 탐험이나 외교 사절단 파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과 티베트 사이의 공식 접촉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톨스토이와 돌런의 라싸 방문은 미국과 티베트의 첫 공식 교류로 평가됩니다.

전쟁 속에서 성사된 역사적 방문
당시 미국은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 있던 중국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버마를 점령하면서 주요 보급로가 끊기자 미국은 새로운 수송 경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티베트를 통과하는 육상 보급망 구축 가능성이 검토됐습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탐험 경험이 풍부한 브룩 돌런과 OSS 장교 일리아 톨스토이를 특사로 임명했습니다. 두 사람은 인도에서 출발해 수개월 동안 험난한 지대를 횡단한 끝에 1942년 겨울 라싸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티베트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에는 공식 외교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번 방문은 양측이 직접 접촉하는 최초의 역사적 계기가 됐습니다.

루스벨트의 친서와 티베트의 답례
두 특사는 어린 제14대 달라이 라마에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편지에서 루스벨트는 미국 국민들이 티베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미국과 연합국들이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일리아 톨스토이와 브룩 돌런을 자신의 공식 대표로 소개하며 우정의 표시로 선물을 전달한다고 적었습니다.
티베트 측 역시 우호적으로 응답했습니다. 달라이 라마 측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답신을 보냈으며, 티베트 불교의 성화인 탕카 4점 등을 답례품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기대했던 군사적 목표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조사 결과 티베트의 험준한 산악지형과 열악한 교통 여건 때문에 대규모 군수 물자를 수송할 육상 보급로를 건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결국 티베트 경유 보급 계획은 추진되지 않았지만, 일리아 톨스토이와 브룩 돌런의 방문은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라싸에 머물며 티베트 고위 관료들과 회담을 갖고, 신년 축제(Losar)를 관람하며 영상과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고 도착 다음 해 봄이 오기전 라싸를 떠났습니다.

톨스토이의 손자와 달라이 라마의 시계
당시 방문이 더욱 흥미롭게 여겨지는 이유는 특사 가운데 한 명이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손자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일리아 톨스토이는 미군 장교가 되어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로 향했습니다.
대표단이 전달한 선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보낸 파텍 필립 회중시계(Reference 658)입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단 20여 점 미만만 제작된 초희귀 모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기계 문명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달라이 라마는 이 시계를 무척 아꼈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미국 정계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이 시계에 얽힌 특별한 비하인드를 직접 회고하곤 했습니다
특히 이 시계는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현재까지도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0여 년 전 미국과 티베트가 처음으로 공식 접촉했던 순간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물인 셈입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톨스토이와 돌런의 티벳 방문을 단순한 전시 외교 활동이 아니라 미국과 티베트가 처음으로 서로를 직접 마주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합니다. 히말라야를 넘은 두 장교의 여정은 결국 한 통의 편지와 작은 선물을 넘어, 서로 다른 세계가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역사적 순간으로 남게 됐습니다
